유촌레지던시 그룹전 《Still In The Room》
여러 장르의 예술가가 한자리에 함께 머물고 교류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공간을 매개로 예술적 상호작용을 창출한다. 아트리움 모리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유촌창작스튜디오는 2025년 4월, 2기 입주작가인 유지혜, 임도, 최우영 작가를 맞이했다. 단순한 작업 공간을 넘어 서로의 존재에 대해 미묘하게 반응하는 섬세한 시간들을 켜켜이 쌓아온 이 장소에서, 그들의 작업세계를 살펴보는 그룹전 ‘Still In The Room’을 개최한다.
공간이 영역, 장소와 같은 좌표적 의미를 넘어서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자리로 역할 할 때, 유촌창작스튜디오는 물리적인 거주의 공간, 작업 장소를 넘어 서로를 확장시키는 살아있는 공간이 된다. 이 전시는 세 작가의 개별적 작업을 통해 존재와 공간의 관계에 대해 질문한다. 세 작가의 작업으로 발현되는 특정한 공간으로부터 우리는 존재의 다양한 측면을 바라볼 수 있다. 작가 유지혜는 캐릭터로 연출된 자아와 그것이 정서적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캔버스 안에 자아가 안착하는 환경을 형성한다. 작품 속 가상의 장소는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의 존재론에서 등장하는 장소의 개념인 토포스(topos)와 같이 상황이나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관계 속에서 이해되고 드러난다. 작가의 작품 속 다양한 공간들은 자아가 쉴 수 있는 심리적 토포스로 역할하며 공간과 자아는 서로의 정체성을 구축한다. 한편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고뇌를 탐구하며 다양한 감정을 구체적인 상황으로 묘사하는 작가 최우영은 일상의 장면을 소재로 보편적 인간 경험을 다룬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의 작업은 대형 캔버스와 드로잉 시리즈로 분류된다. 캔버스에 등장하는 생략된 배경 위의 얼굴 없는 인물은 몸짓과 자세만으로 상황의 분위기와 감정을 창조하는 반면, a5 사이즈의 작은 종이 드로잉 시리즈에서는 보다 구체화된 장소의 재현과 표현으로 상황이 묘사된다. 인물의 시선, 몸의 방향, 소품의 종류 등 디테일한 설정으로 비롯되는 현장감은 흑백 영화의 스틸컷처럼 관객으로 하여금 더욱 이 이야기에 긴장감을 가지고 몰입하게 한다. 전시장의 마지막 동선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작가 임도의 설치작업 <자르다, 풀어헤치다, 붙이다>(2025)는 대형 벽면을 가득 채우는 압도적인 스케일로 관객의 신체를 작가가 창조한 물리적 공간으로 이끈다. 관객은 작가의 실천을 통해 형성된 이 공간을 마주하며 수행의 개념을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실이라는 평범한 도구가 작가의 손길을 거쳐 실존적인 공간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통해 이곳은 물리적 구조물이 아닌 행위로 열리는 공간으로 숨 쉬며, 생성되는 공간으로 역할 한다.
이처럼 공간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고 의미를 창조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유촌창작스튜디오는 세 명의 작가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는 장소이자 그들이 함께한 시간의 축적이다. 이곳은 감정, 몰입, 수행, 긴장이 교차하는 살아있는 공간이다. 이 전시는 존재가 어떻게 공간에 자리 잡고, 그 공간을 의미화 하는지에 대해 탐구한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세 명의 입주작가가 약 1년의 시간 동안 함께하며 서로의 존재를 흔들고 감응하는 과정을 통해 이 무대 위에 새겨질 흔적들을, 그럼으로 서로를 통해 자신을 확장하는 여정을 함께해 주길 바란다.
아트리움 모리 큐레이터 태병은